사람이 자기 자신을 안다는 것은 어렵다. 자기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 많다면 지금보다는 더 좋은 인간관계가 이루어질 것이며 인간관계로 고민하는 사람들이 적을 것이다. 인간관계에서 피해야 할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런 부류도 있다는 것을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용접 중년 과정에 참여한 A 씨
A 씨는 올해 정년퇴직을 하고 제2의 인생을 살기 위해 지인의 소개로 용접을 배우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직업학교에서 운영하는 신중년 용접과정에 면접을 보고 합격을 해서 용접을 배우고 있다고 한다. 용접에는 피복(전기) 용접, CO2용접, 알곤(TIG) 용접이 있다고 한다. 피복 용접은 용접기능사에 해당하는 자격증이고, CO2와 알곤용접은 특수용접에 해당하는 자격증이라고 한다. A 씨가 들어간 직업학교에는 각각의 용접 파트마다 실습을 담당하는 교수가 있다고 한다.
A 씨는 용접 자격증 취득을 위해 용접기능사와 특수용접기능사 필기시험에 응시해서 2가지다 합격했다고 한다. 이제 마지막 실기시험까지는 40일도 채 안 남았을 때였다고 한다. 피복 용접은 80~90A(암페어)의 낮은 전류 사이에서 1차 용접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전류가 높을수록 용접봉에 스파크를 일으키는 것이 쉽지만 낮은 전류에서는 스파크를 일으키는 게 초보자들에게는 생각보다 쉽지 않다고 한다. 용접은 스파크가 일어나야 할 수 있기 때문에 A 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고민이었다고 한다.
동문서답
하루는 피복 용접을 담당하는 교수가 학생(신중년)들을 모아놓고 궁금한 내용은 질문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때 A 씨는 교수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한다. "교수님 용접봉에 스파크가 잘 안 나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여러분이 이러한 질문을 받은 교수라고 한다면 어떻게 대답해줄 수 있을까? 아마도 '이렇게, 저렇게 해보시는 게 어떨까요?'라든지 다른 노하우를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A 씨는 아주 황당한 대답을 듣게 된다. 그 황당한 대답은 교수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가 어떻게 스파크를 내드려요. 스파크는 본인이 알아서 내야지요."라는 말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것은 동문서답의 말이 아닐 수가 없다. A 씨는 스파크를 내는 방법이 뭐가 있을지 물은 것인데, 교수는 황당하게도 자기가 스파크를 내줄 수 없고 본인이 알아서 내야 한다고 했다.
A 씨는 너무 황당한 답변에 순간 어이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수가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서 다시 정중하게 말했다고 한다. "교수님, 용접하는 사람이 스파크를 내는 것이 당연하지요. 어떻게 교수님이 스파크를 내줍니까? 제가 물어본 것은 스파크를 내는 방법에 대한 노하우를 물었던 것입니다. 가령 용접봉의 각도는 얼마가 적당한지, 용접봉을 모재(철판)에 찍어야 스파크가 잘 일어나는지, 긁어야 잘 일어나는지 또는, 스파크를 일으킬 때 용접봉 철심과 겉에 둘러싼 피복과는 상관성이 있는지 이런 디테일한 부분을 물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자. 교수는 자신이 잘못 이해했다는 말도 안 하고 스파크에 대해서만 말하고 끝났다고 한다.
그 후에 A 씨는 아깝게 피복 용접 실기시험은 떨어졌지만 특수용접 실기시험은 합격을 했다고 한다. A 씨는 직업학교의 열악한 환경에서 합격한 것에 대해 속으로 너무 기뻤다고 한다. 용접을 연습할 수 있는 충분한 재료(모재)가 없었고 시간도 턱없이 부족했지만 합격한 것에 대해서 너무 자랑스러웠다고 한다. 이러한 마음을 먹고 있던 A 씨와 피복 용접 담당 교수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고 한다. A 씨는 열악한 환경에서 특수용접이라도 자격증을 취득해서 기쁘다고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용접 담당 교수는 이상하게 말을 받았다고 한다. A 씨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재료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특수용접이라도 자격증을 취득해서 너무 기쁩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교수는 "다른 곳은 재료를 더 주지 않아요. 여기처럼 많이 주는 곳이 없어요."라고 하더란다. 그래서 A 씨는 "다른 사람 말에 의하면 다른 곳은 더 준다고 하던데요"라고 하자. 그 교수는 "다른 사람 말을 다 믿으면 안 돼요"라고 말하더니, 그다음 말이 가관이었다고 한다. "저에게 말해봐야 소용없어요"라고 하더니 가더란다.
A 씨가 하고자 하는 말은 나름대로의 열악한 환경에서 자격증을 취득해서 기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교수는 말의 요지를 오해해서 다른 차원의 대답을 한 것이다. 이 외에 A 씨가 용접하는 방법에 대해 교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럴 때는 허리를 숙여가면서 용접을 해야 되는군요"라고 말했더니 교수의 대답은 "사람이 슈퍼맨도 아닌데, 이렇게 어떻게 해요."라고 말하더란 것이다. 이 외에도 황당한 대답이 더 있다고 한다.
누가 문제일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럼 교수는 왜, 황당하게 대답을 하는 것일까? A 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교수에게 문제가 있는 것일까? 아니면 두 사람 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A 씨의 질문에 대한 의도는 어느 정도 명확한 부분이 있다. 용접 스파크에 대한 질문은 분명 스파크를 내는 방법을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교수는 엉뚱한 대답을 했다. "제가 스파크를 내드릴 수는 없잖아요"라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말에 대한 정확한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고 상대방의 말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서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다. 상대방의 말을 자신의 머릿속에서 제 가공하여 말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질문자의 질문과 답변자의 답변이 달라지는 것이다.
두 번째, A 씨는 실기시험에 합격한 것에 대해 나름대로 자기만족과 성과에 흡족했다. 그래서 그는 "재료도 충분히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자격증을 취득해서 너무 기쁩니다."라고 했다. A 씨는 자격증 취득이 기쁘다고 말한 것이지 재료가 주어지지 않은 것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을 말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런데 교수는 엉뚱하게 결론을 내렸다. "다른 곳은 재료를 더 주지 않아요. 여기처럼 많이 주는 곳이 없어요.", "다른 사람 말을 다 믿으면 안 돼요", "저에게 말해봐야 소용없어요"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마치 A 씨가 '재료를 왜 안 줍니까?'라고 불평, 불만하는 사람으로 한순간 만들어 버렸다. 교수는 이번에도 자기 나름대로 상대방의 말을 해석해서 제 가공하여 결론을 내렸다.
그 외에 A 씨가 "이럴 때는 허리를 숙여가면서 용접을 해야 되는군요"라고 말한 부분은 '이런 방법도 있군요'라는 의도의 말이다. 그런데 교수는 엉뚱하게 답변을 했다. "사람이 슈퍼맨도 아닌데, 이렇게 어떻게 해요."라는 말이다. 이 대답도 황당한 대답이다. 정상적인 답변이라고 한다면 교수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네, 용접할 때는 상황에 따라 이런 방법도 사용을 합니다."라고 말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교수는 이번에도 다른 차원에 속한 사람처럼 말을 했다.
A에게 말해준 피드백
그래서 A 씨는 자신의 답답함을 누구에게 말할 수 없어 나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A 씨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 "앞으로 교수와 대화하는 것을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말을 피하고 답을 요구할 때는 간결하고 명료하게 짧게 말하시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교수와 같은 사람은 알려준다고 바뀌는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머릿속에서 상대방의 말을 해석해서 제 가공하여 결론을 내리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고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이해를 전혀 못 한다. 이런 습관을 고치려면 자신보다 뛰어난 사람이 말해야 들을 것이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말해봐야 소용없다. 이런 사람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감정의 소모는 심하게 될 것이고 이런 사람은 이상한 쪽으로 결론을 내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는 사람에게는 절대 이득이 될 것이 없다. 이런 사람의 잘못된 해석과 결론이 뜻하지 않은 문제를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거리를 멀리 두는 것이 가장 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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